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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긴급 처방전, 머그컵 브라우니

 

[TOPIC:4] 긴급 처방전, 머그컵 브라우니 (정연주)

 

어째서 머그컵 브라우니를 만들었는가.

 

자고로 베이킹이란 오븐으로 하는 것이니, 할 거면 제대로 오븐에서 굽고 아니면 차라리 팬케이크류로 전향해야 옳다. 요리마다 최적의 도구가 있기 마련이니까. 냄비에 끓여야 제격인 라면을 프라이팬에 삶아놓고 맛이 왜 이러냐고 투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뜸 달리는 오븐 없는데식의 댓글을 보면 신물이 난다. 오븐 비싼 거, 알지. 내가 쓰는 오븐도 비용·공간 문제로 미니오븐이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도구일 뿐이니, 오븐이 없으면 있는 도구로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요리하면 된다.

 

그런데 왜 굳이 머그컵과 전자레인지라는 조합으로 머그컵 브라우니를 만들었는가?

 

브라우니는 특별하다. 어디가? 성질 급할 때는 씹어먹어야 하는 덩어리 판초콜릿도 아니고 아말감을 위협하는 찐득한 캐러멜 조각도 아닌, 촉촉하고 말랑하고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라는 점이. 부드러워서 살살 녹는 초콜릿 케이크는 시시때때로 한 번씩 먹어줘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다. 온통 회색에다 가끔 시커멓게 시드는 팍팍한 인생을 살다보면 가끔 초콜릿을 주입해서 그래도 여기는 살만한 세상이라고 스스로를 속여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브라우니는 크게 망칠 걱정도 없고 초콜릿 덕분에 기본 맛이 보장되지만, 그래도 이상적인 브라우니를 만들려면 초콜릿 두 종류를 블렌딩하고 중탕 냄비를 꺼낸 다음 적당히 구워서(촉촉해야 하니까) 충분히 식은 다음 잘라서 보관해둔다는 섬세함이 요구된다. 하지만 당장 내가 지치고 힘들어서 위로가 필요한 위급 상황에 과연 산처럼 쌓일 설거지가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러니 계량부터 조리까지 컵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머그컵 브라우니는 정신 건강을 위한 긴급 처방이다.

 

 

나만의 머그컵 브라우니를 찾기 위한 여정은 놀랍게도 분노의 도로였다. ‘설거지 없음+전자레인지 조리라는 간편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인지, 재료가 빈약한 레시피가 많았기 때문이다. 원래 복잡한 과정은 좋아하지만 복잡한 재료는 싫어하는만큼, 간단한 재료로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면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첫 시도는 원본 그대로 시행한다는 레시피 테스트 규칙대로 밀가루와 설탕, 코코아 파우더, 소금, 시나몬 파우더, , 식용유, 바닐라 익스트랙트로 이루어진 브라우니를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준초콜릿제품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분노를 맛보았다. 골판지를 불려서 우유에 타먹는 코코아 제품을 넣고 찌면 아마 이런 맛이 날 것이다. 왜 굳이 재료와 전기를 낭비해서 이런 것을 만들어 입에 넣어야 하는가! 초콜릿을 입힌 시판 과자 제품을 사다가 뜯는 편이 수천 배 낫지 않는가! 알레르기가 있지 않는 이상, 대체 왜 달걀과 버터를 이렇게까지 혐오하는가! 갈곳 없는 화가 치밀어올라서 레시피를 대폭 수정하기로 했다. 아무리 재료가 간단해야 한다 하더라도 정도가 있지, 연금술을 터득하지 않는 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일단 식용유 대신 버터를 넣기로 했다. 그리고 코코아 파우더를 넣으면 초콜릿의 풍미가 정돈되면서 깊어지니 반드시 질 좋은 제품으로 조금 넣어주는 게 좋지만, 초콜릿 커버춰만이 줄 수 있는 묵직함과 진한 맛이 있다. 어차피 식용유 대신 버터를 넣기로 했으니 중탕을 하지 않아도 전자레인지에서 초콜릿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 대신 우유, 달걀을 넣고 바닐라와 시나몬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 있는 재료를 넣어야 맛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 아닌가.

 

일단 혹시라도 타지 않도록 버터와 우유, 잘게 깎은 초콜릿 커버춰를 컵에 담고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려서 데운 다음 저어서 완전히 녹였다. 초콜릿 칩을 사용하면 더 쉬웠겠지만 첫 시도의 불쾌감이 너무나 엄청나서, 세미스위트 초콜릿 커버춰를 굳이 컵 위에서 칼로 깎았다. 그리고 진한 맛을 내고 싶어서 흰설탕과 무스코바도 설탕을 섞어서 넣고, 달걀과 코코아 파우더, 밀가루를 넣었다. 부풀게 만들려고 베이킹 파우더도 넣고, 소금과 바닐라·시나몬을 더했다. 가루가 뭉치지 않도록 골고루 잘 섞은 다음에 윗부분을 적당히 다듬고 전자레인지에 넣어서 1분간 돌렸다. 안 익었잖아? 상태를 보면서 30초씩 두 번 더 돌렸다. 브라우니는 너무 익으면 퍼석해지니까 차라리 덜 익은 쪽이 낫다.

 

결과는? 맛있다! 버터와 초콜릿의 풍미가 느껴지면서 촉촉하고 달콤했다. 맛이 정돈되니까 이제사 머그컵 브라우니의 장점이 느껴졌다. 손잡이가 달려 있으니까 전자레인지에서 꺼내기 쉽고 먹기도 편하고, 베이킹 파우더 덕분에 컵 위로 부풀어오르긴 했지만 조금 먹고 나서 아이스크림을 얹기도 좋았다. 한 판씩 굽는 게 아니니까 만들기 부담스럽지도 않고, 다 먹고 나서 컵만 씻으면 되니까 뒷정리 스트레스도 없다. 무엇보다, 초콜릿이니까.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초콜릿이니까.

 

 

인간적으로 너무나 간편했기 때문에 새콤함을 가미한 간단한 소스를 곁들여봤다. 버터와 설탕, 시나몬을 약간 넣고 가볍게 볶은 델라웨어 포도알에 서산 해미에서 공수한 앵두에 팔각과 시나몬을 넣어서 만든 스파이스 앵두 젤리를 녹여서 3분만에 만든 앵두 포도 소스다. 아무래도 단맛이 위주인 브라우니에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함께 곁들이기 딱 좋았다. 시골집 나무에서 딴 살구로 만든 탓에 산도가 엄청난 살구잼과 복숭아로 소스를 만들어도 어울릴 듯 하다. 요컨대 냉장고에서 신맛이 도는 과일과 잼을 꺼내서 대충 졸이면 될 것 같다는 뜻이다.

 

 

, 부엌에 선 채로 십분 만에 만들 수 있는, 지치고 외로운 날을 위한 긴급 처방전. 머그컵 브라우니 레시피다.

 

머그컵 브라우니

 

재료(컵 하나 분량)

버터 30g, 세미스위트 초콜릿 또는 초콜릿칩 30g, 우유 3큰술, 황설탕 4큰술, 달걀 1, 박력분 40g(4큰술), 코코아 파우더 2큰술, 베이킹 파우더 1/4작은술, 바닐라 익스트랙트 1/4작은술,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컵에 버터와 초콜릿을 잘게 잘라 넣고 우유를 붓는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30초간 돌린 다음 잘 저어 녹인다. 덜 녹았으면 약 15초 정도 더 돌린 다음 젓는다.

2 컵에 황설탕, 달걀, 박력분, 코코아 파우더, 베이킹 파우더, 바닐라, 소금을 넣고 잘 섞는다.

3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간 돌린다. 전자레인지 세기에 따라서 상태를 봐가며 30초씩 더 돌려 익힌다. 너무 바짝 익히지 않도록 주의한다. 취향에 따라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과일 소스를 넣어 먹는다.

 

*과일 소스 만들기: 프라이팬에 버터 5g과 설탕 약간, 시나몬 파우더 약간을 넣고 녹인다. 잘게 자른 과일(포도, 복숭아, 자두, 뭐든)을 넣고 가볍게 볶은 다음 산미가 있는 잼을 넣고 끓인다. 농도는 물로 조절한다.

 

 

Writing:&Drawing 정연주

 

Blog: 같은 주제 아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모임, 『노네임 포럼』 http://nonameforum.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