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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빵과 샌드위치의 마리아주

정연주_旅路食 2016.09.04 00:25

 

다시는 탄수화물을 무시하지 마라

빵과 샌드위치의 마리아주

 

탄수화물은 마성의 물질이다. 이유를 알 길 없는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와 오로지 빵집을 찾기 위해 버스며 기차에 오르는 전국 빵순이들의 시도때도 없는 금단증상은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덕분에 지방과 더불어 다이어터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탄수화물을 배척하라! 아마 중독성이 더 강해서인지, 묘하게 지방보다 더 큰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런 탄수화물이 지닌 마성의 매력이 제일 두드러지는 음식은 바로 샌드위치다. 재료만 적절히 배치하면 균형잡힌 식단이 된다는 샌드위치지만, 만일 여기서 빵을 뺀다면 무엇이 될까? 그냥 샐러드다. 때로는 필리 치즈 스테이크처럼 빵을 빼면 그라탕 비슷한 메뉴가 되기도 하지만, 생야채만 씹다 보면 서글퍼지는 사람이 그나마 샐러드를 먹을 수 있게 만드는 음식이 있다면 샌드위치일 것이다. 물론 질 좋은 올리브유와 셰리 식초가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는데, 그래도 몇 조각 없는 크루통을 찾아 샐러드를 헤집느니 피타 빵에라도 끼워 먹는 편이 낫지 않은가.

 

강력한 매력 발산 물질 답게, 샌드위치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도 팔 할이 빵이다. 이 팔 할에는 빵 자체의 맛과 신선도 등 뿐만 아니라 얼마나 적절한 빵을 골랐는지가 포함된다. 예를 들어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달콤한 과일 생크림 샌드위치를 질깃한 치아바타로 만들었다면? 진득한 소스가 뚝뚝 흐르는 토마토 미트볼을 잠깐만 방심해도 곤죽이 되어버리는 얇고 연약한 흰 식빵에 넣었다면?

 

국을 접시에 담지 않듯이 샌드위치를 만들 때도 적재적소에 꼭 어울리는 빵을 고르는 것이 급선무다. 부정할 길 없는 탄수화물 중독자가 찾아낸 빵과 샌드위치 마리아주를 만나보자.

 

식빵

어린 시절에는 문답무용, 샌드위치라면 일단 식빵이었다. 딱히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닌 것이, 미국에서도 천연 효모나 시골빵만 판매하는 가게에 들어온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샌드위치 식빵은 팔지 않느냐고 묻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익숙하고 쓰기 편한 빵이지만 사실 부드럽고 연약해서 모든 샌드위치에 어울리지는 않는다. 궁여지책으로 바삭하게 구워서 버터나 마요네즈를 발라 수분 흡수를 막기는 하지만 역부족이다. 또 로만밀 식빵처럼 자체의 맛이 강하면 조금 낫지만, 기본적으로 맛과 질감이 섬세한 편이라 향신료를 강하게 넣거나 진득한 소스가 넘치면 빵의 인상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그래도 꼭 하얀 식빵으로만 만드는 샌드위치가 있다면 미국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평균 천오백개 이상 먹는다는 피넛버터 젤리 샌드위치다. 그리고 부드럽게 거품낸 생크림에 달콤한 과일을 넣은 과일 생크림 샌드위치도 반드시 당일 구운 식빵으로 만든다. 이렇게 보면 달콤한 샌드위치가 주류일 것 같지만, 왠지 예외가 있다면 일식 돈가스 샌드위치만큼은 조금 두텁게 썬 식빵으로 만드는 편이 어울린다. 치아가 돈가스에 닿기 전까지 아무런 방해물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부드럽지만 또 느끼하지 않을 만큼의 존재감을 준다.

 

(모닝빵)

, 모닝빵, 디너롤, 여러가지 이름으로 통하지만 자그마한 주먹만하고 동글납작한 빵이다. 식빵과 더불어 어린 시절 제과점에서 투명한 비닐 안에 두 개씩 차곡차곡 넣어서 열 개 남짓 담아 팔던 익숙한 빵이다. 반으로 갈라서 감자 샐러드, 달걀 샐러드 등 주로 으깨서 만드는 부드러운 샐러드를 넣으면 전체적인 질감이 잘 어우러진다. 역시 반으로 잘라 단면을 버터에 살짝 지져서 미니 햄버거를 만들 수도 있다.

코스트코 매장에서 판매하는 디너롤은 자주 접하던 모닝빵보다 밀도가 높고 단단해서 조금 더 존재감 뚜렷한 속재료를 넣어도 잘 버틴다. 이 디너롤로 가장 자주 만드는 메뉴는 버섯 크림 샌드위치다. 버터에 가볍게 볶은 버섯에 크림 소스를 넣고 뻑뻑하게 졸인 다음 반으로 가른 디너롤에 얹고 취향에 따라 허브와 모차렐라 치즈를 얹은 다음 오븐토스터에서 가볍게 구워낸다.

 

바게트

크러스트가 바삭바삭하고 속살이 부드러운데다 반으로 길게 가르면 어떤 재료를 넣어도 잘 버텨서 샌드위치용으로 정말 많이 쓰이는 빵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크러스트가 너무 바삭해서 어떤 빵보다도 강력한 입천장 공격을 받기 때문에 가능하면 차라리 시골빵을 쓰는 편이다. 물론 반미 샌드위치는 예외다. 반미만큼은 반드시 바게트로 만들어야 한다.

반으로 가르지 않고 속을 파내서 크림치즈나 감자 샐러드 등으로 촉촉하게 한 덩어리로 만든 속재료를 꼭꼭 채워넣은 터널형 샌드위치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왠지 애매한 크기로 자른 김밥처럼 한 입 깨물면 뒤로 속재료가 다 터져나오지 않을까 싶다. 샌드위치보다는 차라리 하룻밤 재운 촉촉한 프렌치 토스트나 마늘빵을 만들고 싶은 빵이다.

 

시골빵

천연 효모빵이든 호밀빵이든 가리지 않고, 큼직하고 둥글넙적한 모양을 갖춘 식사빵 깜빠뉴. 식빵처럼 슬라이스해서 각종 샌드위치에 사용하기 좋다. 식빵보다 밀도가 높고 자체의 이 더 강한 편이라 맛이 진한 재료를 넣거나 어느 정도 쌓아도 조화롭다. 다만 크러스트가 아니라 잘린 단면이 위아래로 간다는 점만큼은 변함이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 속재료의 수분을 머금어 뭉개질 확률이 있다. 그럼에도 시골빵을 사용해야 하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면, 완성품이 예쁘다는 것이다. 깔끔하게 쌓아도, 치즈를 마구 갈아 뿌려서 군데군데 그을리게 구워도 예쁘다.

속을 그릇처럼 깔끔하게 사각으로 파서 샌드위치를 만든 다음 다시 끼워넣고 뚜껑처럼 닫은 빵을 본 적이 있는데,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파티 메뉴다.

 

크루아상

크루아상은 샌드위치를 만들기 제일 어려운 빵인데, 일단 있으면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자제하고 남겨놓을 수만 있다면, 바삭하고 촉촉하고 버터향이 물씬 풍기는 끝내주는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다. 심플하게 햄과 치즈에 머스터드만 넣어도 맛있고, 익혀서 깍둑썬 치킨 샐러드나 훈제 연어, 삶은 달걀 등 단백질 재료를 든든하게 넣어도 잘 어울린다. 딸기에 브리 치즈, 무화과에 블루 치즈처럼 섬세한 풍미의 조합을 즐길 수도 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조합은 유자 콩피를 다져 넣은 크림치즈에 훈제 연어, 그리고 살짝 볶은 노란 파프리카였다. 너무 복잡하게 만들기보다 재료 하나하나의 풍미를 고려해서 넣으면 가장 조화를 잘 살려주는 샌드위치 빵이다.

 

베이글

베이글 샌드위치라고 하면 왠지 언제나 훈제 연어가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밀도 높고 탄탄해서 어지간한 재료를 넣어도 잘 버티고, 쥐고 먹기 좋고, 블루베리나 어니언·양귀비씨 등 종류도 많아서 다양한 조합을 만들 수도 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배가 좀 많이 부르다는 것일까. 크림치즈나 훈제 연어처럼 이미 궁합이 검증된 재료도 있지만, 어지간한 치즈나 햄은 물론 스크램블 에그나 오믈렛, 수란, 베이컨, 아보카도 등 아침식사에 자주 등장하는 재료는 어지간하면 다 잘 어울린다.

 

치아바타

슬리퍼 모양이라는 이름을 지닌 빵으로, 파니니에 가장 많이 쓰인다. 적당히 부드러운 크러스트에 전체적으로 살짝 질깃질깃하고 맛이 담백해서 개인적으로 샌드위치 만들기에 제일 즐겨 사용한다. 원래도 바삭하게 구워서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에 찍어먹곤 하니까, 지중해를 떠올리면서 발사믹에 어울릴법한 재료를 써보면 독특하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다. 만약에 가지, 호박, 양파, 파프리카 등이 남아있다면 그릴에 구워서 페스토를 바른 치아바타에 끼워보자. 파마산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햄이나 새우 등 단백질을 굳이 넣지 않아도 맛있는 샌드위치가 된다. 카프레제 샌드위치에도 제일 잘 어울리는 빵이다.

스타벅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샌드위치로 햄 치즈 루꼴라 샌드위치가 있는데, 아마 이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팔 할은 빵이 치아바타라는 점일 것이다. 맵싸한 루꼴라와 데워서 주욱 늘어나는 치즈가 나머지 비중을 조금씩 나누어 가질 것이고.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마리아주는 본인 취향에 따르는 것. 다양한 빵과 재료를 조합해서 자신만의 샌드위치를 만들어보자.

 

Writing&Drawing 정연주

Blog: 같은 주제 아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모임, 『노네임 포럼』 http://nonamefo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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