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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촉촉한 글루텐 프리, 밤 초콜릿 케이크

 

영화 <마틸다>에 등장하는 한 통통한 남자아이는 강당에 모인 전교생이 응원하는 가운데 쟁반 가득히 담긴 초콜릿 케이크를 몽땅 먹어치우고 얼굴이며 손, 팔까지 초콜릿 범벅을 한 채로 포효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 중에서도 그다지 입맛을 당기게 하는 장면은 아니지만, 초콜릿에게 마땅히 강요하고 싶은 미덕 하나만큼은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바로 치명적인 '녹진함'이다.

 

초콜릿은 본래 굵은 나무줄기에서 툭 튀어나온 큼직한 꼬투리 속 콩으로 태어나는데다, 제과제빵을 하는 사람이라면 주로 어디에나 쓸 수 있는 딱딱한 판초콜릿 형태로 만나게 된다. 무릇 초콜릿이라면 촉촉하고 부드러워야지! 하고 주장하기에는 애로사항이 크다. 하지만 모든 여정을 거쳐 내 입속에 들어올 초콜릿이라면 반드시 뚝뚝 흘러내리기 직전이라고 할 만큼 녹진하길 바란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잔뜩 묻혀서 도저히 먹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유혹적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바게트 크러스트나 고로케 튀김옷처럼 입천장을 공격하는 바삭함을 반드시 갖춰야 할 음식을 제외하고는 부드럽고 촉촉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초콜릿 케이크만큼은 촉촉함이 보편적인 진리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브라우니 레시피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브라우니가 다 구워졌는지 확인할 때는 반드시 꼬챙이로 찔러봐서 '반죽이 조금 묻어나오는지' 봐야 한다. 꼬챙이가 깨끗하게 빠져나올 때까지 구우면 퍼석퍼석해지기 때문이다. 고로 브라우니를 구울 때면 완성하기 5분 전부터 오븐 앞을 맴돌다 다급하게 꺼내서 급히 틀을 분리한다. 과하게 익히느니 차라리 볼에서 반죽을 직접 긁어 먹는 편이 낫겠다.

 

녹진한 초콜릿을 향한 갈망은 크고도 깊어서 초콜릿계 전반으로 퍼져나간다. 일본여행의 필수 구매목록을 차지하는 생초콜릿, 비교적 퍼석한 초콜릿 케이크를 훌륭하게 커버해주는 초콜릿 가나슈와 필링, 틀을 뒤집어 꺼내는 게 불가능한 초콜릿 푸딩. 지난 발렌타인 데이에는 자르는 순간 초콜릿이 극한으로 콸콸 흘러나오는 몰튼 초콜릿 케이크를 굽고 싶어서 밀가루를 계량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량만 넣고 오븐에 최소한의 시간만 넣어서 반죽이 간신히 고체의 형태를 유지할 만큼 익히는 레시피를 시도했다가 부엌 바닥에 커다란 초콜릿의 다잉 메시지를 그리고 마는 참변을 겪기도 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특별한 날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하던 대로 살짝 흐를 만큼 구울걸.

 

아무튼, 지난번에 만든 머리가 얼얼할 만큼 달콤한 밤절임(마롱 글라세 풍 바닐라 밤절임http://nonameprojectstory.tistory.com/40)을 그간 화과자 먹듯이 디저트 포크로 조금씩 쪼개 먹다가 오븐을 켜고 새로운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냈다. 물론 목표는 달콤하고 촉촉하고 녹진한 초콜릿 케이크. 이번 레시피의 성공 포인트는 '밀가루를 넣지 않은 초콜릿 케이크(flourless chocolate cake)'에서 차용한 아몬드가루다. 밤과 초콜릿에 아몬드라는 조합이 왠지 차가운 날씨에 집안에 콕 박혀 따뜻한 케이크나 잘라 먹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생각해보니 글루텐 프리가 된, 셀링 포인트가 묘하게 주객전도인 케이크라 하겠다.

 

초콜릿과 버터는 중탕해서 녹여야 하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려가며 녹여도 상관없고, 설탕과 달걀도 적당히 섞일 만큼만 저어주면 된다. 레시피에는 100g이라고 적었지만 밤절임은 훨씬 많이, 넣고 싶은 만큼 넣었다. 사실 초콜릿은 그 자체로 반죽에 충분히 바디감을 주기 때문에 계량을 대충 해서 되는 대로 구워도 어지간해서는 실패할 일이 없다. 밤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 때 주의할 점은 굽기 전에 반죽을 넣은 틀을 바닥에 탕탕 쳐서 공기를 뺄 것, 절대 너무 오래 굽지 말 것 두 가지 뿐이다. 평소 만들던 대로 20X20cm 틀 하나에 다 부었는데, 틀 두 개에 나눠서 납작하게 구우면 따끈할 때 손바닥만하게 잘라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올려 먹기 좋다. 밤절임이 없으면 넣지 않아도 무방하고, 설탕에 재운 크랜베리나 오렌지 필 등 뭐든지 초콜릿에 어울릴법한 재료를 마음대로 넣어서 구워도 상관없다.

 

누구나 마음 속에 소중한 초콜릿 케이크 이데아 하나쯤은 안고 살기 마련. 지칠 때 휘적휘적 구워서 집안을 가득 메운 초콜릿 향을 즐기며 먹고 싶은 녹진한 케이크다.

 

 

밤 초콜릿 케이크

 

재료(20X20cm 정사각형 틀 1개 분량)

다진 밤절임 100g, 다크초콜릿 150g, 버터 150g, 달걀 4, 설탕 180g, 아몬드가루 120g, 코코아파우더 3작은술, 바닐라 익스트랙트 1작은술

 

만드는 법

1 정사각형 틀에 버터를 바르고 유산지를 깐다. 오븐은 175로 예열한다. 다크초콜릿은 잘게 다지고 버터는 깍둑썬다.

2 내열용 볼에 다크초콜릿과 버터를 넣고 중탕하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녹인다. 다른 볼에 설탕과 달걀을 넣고 푼다.

3 녹인 초콜릿을 가볍게 식힌 다음 달걀 볼에 부으면서 잘 섞는다. 아몬드가루를 넣고 잘 섞는다. 코코아파우더와 바닐라 익스트랙트, 다진 밤절임을 넣고 잘 섞는다.

4 반죽을 틀에 붓고 바닥에 탕탕 쳐 공기를 뺀 다음 오븐에 넣는다. 꼬챙이로 찔러봐서 반죽이 살짝 묻어나올 때까지 35분간 굽는다. 틀에서 꺼내 식힌 다음 2.5cm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잘라 밀폐용기에 넣어 보관한다.

Writing&Picture 정연주

Blog: 같은 주제 아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미식 웹진형 블로그, 『노네임 포럼』 http://nonameforum.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