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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갈등의 고리, 떡볶이와 물떡

 

작년 이맘때 생일날, 해야할 일도 거쳐야 할 일도 많아 다사다난한 이십대를 떠내보내며 '지긋지긋한 20대가 드디어 끝났다!'고 외칠만큼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이를 먹으며 두려움 하나가 묵직하게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으니, 바로 탄수화물 과다섭취다.

 

고독한 미식가 이노가시라 고로는 어느 날 식사의 국과 반찬에 '돼지고기가 겹치고 말았다'며 찜찜해하지만, 나는 한 식탁 위에서 탄수화물이 겹칠 때 제일 신경이 곤두선다. 감자볶음도 감자조림도 감자전도 사랑해 마지않지만, 그들의 존재가 탄수화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인지하는 순간 더 이상 지금까지와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차라리 감자며 고구마를 넣어 밥을 지을 지언정, 서로 다른 그릇에 탄수화물 두 종류가 담긴 밥상을 내 손으로 차릴 수는 없다.

 

급식을 받아먹던 시절에도 떡볶이가 반찬으로 나올 때면 밥칸에 쌓인 밥과 반찬칸에 올린 떡볶이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했다. 어째서 삼시 세끼 먹는 밥에 치밀한 탄수화물인 떡을 반찬으로 곁들여 먹어야 하지? 애초에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밥을 먹어야만 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왜 떡만두국을 주면서 밥 한 공기를 퍼 주는가? 이미 국물까지 전분이 녹아나와서 끈적끈적한데.

 

오해하지 말자. 나는 고깃집에 가면 고기를 불판에 올리면서 동시에 밥 한 공기를 주문하고 빵과 떡과 모든 구황작물을 사랑하는 탄수화물 애호가로, '고기로 배를 채워야지'라는 타박을 싫어하는 인간이다. 밥이랑 같이 먹는 편이 더 맛있다는데 대체 왜 시비를 거는가, 그렇다면 기껏 고기로 배를 채우고 나서 밥 한 공기를 꾸역꾸역 된장에 말아 집어넣어야 할 필요는 어디 있느냐는 시비를 되갚아주겠다. 여하튼 약간의 탄수화물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존재다. 다만 한 끼니의 탄수화물은 하나로 제한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내 기준에서 떡볶이는 간식이자 차라리 주식일 지언정 밥의 반찬이라는 존재로 격하할 수 없다. 하지만 경상도로 내려가면 밥이라는 존재를 지워버려도 탄수화물 중복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찬 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생각나는 존재, 물떡이 있기 때문이다. 물떡이란 꼬치에 끼워서 어묵과 함께 다시국물에 푹 불어 말랑말랑 존득존득해진 흰 가래떡이다. 어린 시절에는 빨간 어묵국물용 컵과 함께 물떡은 분식집의 디폴트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웬걸, 서울에 올라와 한참을 지내다 문득 생각해보니 물떡을 먹은지도 연 단위의 시간이 흘렀지 뭔가. 그립고 그리워라.

 

다시국물에 푹 절어 속까지 맛이 밴 물떡은 집에서 쉽게 맛을 내기도 쉽지 않은 대량조리의 산물이다. 지금도 매콤한 떡볶이를 먹다 속을 달래고 싶으면 어묵국물을 마시게 될 것이고, 다시국물을 후루룩 들이키면 어묵탕 속의 어묵이 먹고 싶을 것이고, 뜨끈한 어묵을 베어물면 자동으로 물떡으로 손이 갈 것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물떡과 떡볶이의 겸상은 탄수화물 중독자지만 탄수화물 중복 혐오자인 내가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책가방을 메고 용돈을 털어 분식집 앞을 서성이던 때는 좋았지, 탄수화물이고 나발이고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나는 어쩌다 나이를 먹고 떡볶이와 물떡을 번갈아 바라보며 갈등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이가 시릴 나이도 언젠가 찾아오려나.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시절은 소중하구나. 후회하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먹어야겠다. 우선 떡볶이를 먹고, 참지 못하고 물떡을 한 꼬치 게눈 감추듯 삼킨 다음에.

 

Writing&Drawing 정연주

Blog: 같은 주제 아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미식 웹진형 블로그, 『노네임 포럼』 http://nonameforum.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