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식 이야기

체리 퍼지 브라우니 사람은 얼마나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지. 나는 퀘사디아와 사워크림을 모두 베니건스에서 처음 먹어봤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우리 페퍼리의 촬영 감독님(유튜브 채널 ‘페퍼젤리컴퍼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이나은 씨는 베니건스에 대해서 ‘음, 언니를 따라서 한 번 가본 적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퀘사디야도 몬테크리스토도 모르는 세대와 촬영을 같이 하고 있었다니. 나 라떼야? 꼰대야? 여하튼 나는 동갑내기와 결혼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집안에서 우리끼리 ‘그때 그 음식’을 재현하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번 발렌타인에 먹고 싶은 메뉴는 베니건스에서 먹었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올린 따뜻한 초콜릿 케이크’였다. 누가 먹고 싶었냐면 나다. 원래 발렌타인은 .. 더보기
차슈 바오 번 만드는 이야기 손에 잡히는 작은 성취감이 필요해서 주말이면 뭐라도 만드는 요리 프로젝트를 혼자 하고 있다. 주중에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내가 들어가는 모든 레시피 사이트를 뒤지면서 주말에 뭘 만들지, 그러면 뭘 미리 사둬야 할지 생각하는 걸로 자투리 시간을 때운다. 그리고 이번에는 생일 선물로 가정용 수비드 머신을 받았고, 빵 반죽에 반년 넘게 푹 빠져 있으므로 머신도 개봉하고 찐빵 레시피도 테스트할 겸 차슈 바오 번을 만들기로 했다. 바오 번을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우선 찐빵류의 반죽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레시피를 찾아보면 오븐에 굽는 빵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매우 큰 결격 사유가 있었으니 나는 물 끓이는 것을 싫어한다. 이유는 짚이는 것이 있긴 한데 뚜렷하게는 모르겠고. 그.. 더보기
스타벅스에서 초코 롤링 크로와상 먹은 이야기 스타벅스에서 올해 크리스마스 푸드로 내놓은 베이커리 중 하나. 이외에는 같은 무늬에 색만 다른 초록색 녹차맛 크로와상과 라즈베리맛 크림을 넣은 붉은색(홍국쌀) 크로와상이 있다. 얼마 전에 펌킨 파이 스파이스와 호박 퓌레를 더한 반죽을 겹쳐서 줄무늬 호박 크로와상을 만드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는데, 그와 유사한 형태에 속에는 진한 초콜릿 크림이 들어가 있다. 만일 이 초콜릿 크림 부분이 없었다면 그냥 쌉싸름한 코코아향 반죽이 한 켜 돌돌 말린 따뜻하고 살짝 눅눅한 크로와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초콜릿 크림을 넣었다는 이유로 초코 롤링 크로와상을 주문했기 때문에 호빵에서 단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한쪽 끄트머리부터 냠냠 베어 먹기 시작했다. 한 입 먹고, 또 한 입 먹고. 영원처럼 느.. 더보기
커피와 커피 케이크와 케이크 커피 케이크라는 단어만큼 처음 듣자마자 그거 참 당연히 태초부터 존재하고 있을 법한 음식이구나 싶은 것도 없다. 커피는 당연히 케이크와 어울리니까. 커피에 케이크를 곁들이나요, 아니면 케이크를 커피에 곁들이나요? 참으로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싶은 질문이다. 생각해보자. 치즈케이크에 커피? 맛있지. 파운드케이크에 커피? 먹고 싶다. 바나나케이크에 커피? 이왕이면 아이싱까지 씌운 걸로! 크레페 케이크, 초콜릿 케이크, 딸기 쇼트케이크, 아, 괴롭다. 커피와 케이크를 한 입이라도 먹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한 글자도 쓸 수 없어. 여하튼(커피는 마시고 있지만 아직 케이크는 먹지 못했다). 그러니까 커피 케이크는 이렇게 수많은 선택지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커피에 곁들이는 케이크라고 명명된 녀석이다. 반죽에 커피.. 더보기
랍스터를 생각하며 쉬림프롤을 어디서 랍스터가 퐁퐁 솟아 나오는 바닷속 광산이라도 발견된 것일까? 어느 순간 대형 마트에 갈 때마다 집게를 다소곳하게 모으고 빨갛게 익은 채로 얌전히 포장된 랍스터가 보인다. 모조리 꼬리가 댕그랑하니 말려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랍스터를 길쭉하게 곧은 모양새로 삶으려면 애써 모양을 잡아야 하니 무리도 아니다. 집게발을 휘둘러대는 랍스터를 잡아 펴서 조리용 주걱에 꽁꽁 묶거나, 두 마리를 서로 마주 보게 겹쳐서 묶어 뜨거운 물에 집어넣는 식이다. 이 무슨 호러블한 상황이란 말인가.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깔끔하게 삶은 랍스터를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먹고 싶을 때마다 랍스터를 냉큼 집어 오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아무 때.. 더보기
복숭아 썰어 먹은 날 복숭아는 어떻게든 여름을 날 수 있게 해주는 자연의 선심 같은 것. 민둥민둥한 천도복숭아보다는 보송보송 털복숭아, 아삭아삭 딱 딱한 복숭아보다 떨어뜨리기라도 했다가는 큰일 나는 말랑말랑한 물복숭아가 좋다. 달콤하고 촉촉하니 천년만년 쌓인 피로도 순식간에 풀리는 기분. 해를 거듭할수록 서 있으면 시시각각 당이 떨어져서, 이제는 요리를 하다 말고 중간에 복숭아부터 한 조각 잘라먹기도 한다. 갑자기 너무너무 먹고 싶어 지면 물로 박박 씻자마자 싱크 대위에서 즙이 뚝뚝 떨어지도록 베어 물기도 한다. 반달 모양으로 쓱쓱 잘라서 접시에 담은 다음 길게 남은심을 빨아먹는 건 과일을 깎은 사람의 특권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일회용 칼과 포크로 일하는 틈틈이 한 조각씩 잘라먹었다. 그냥 심심해서. 가끔 좋아하는 음식을.. 더보기
성격 테스트용, 아보카도 꽃 아보카도에 관해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캘리포니아의 강아지 설이다. 어디서 들었더라. 캘리포니아에서는 아보카도가 익을 즈음이 되면 거리에 떨어진 아보카도를 주워 먹고 강아지들이 통통하게 살이 찐다고. 강아지 몸매가 아보카도화 된다는 걸까. 생각만 해도 귀엽다. 밥을 먹을 때면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를 원그래프 그리듯이 머릿속에서 채워본다. 밥은 탄수화물, 고기는 단백질, 채소는 이따 저녁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아보카도는 대체 어떤 부분을 채웠다고 생각하면 좋을지 약간 곤란하다. 무려 과일이라는데 달지는 않고 탄수화물에 지방에 단백질까지 있으니까. 내 마음속에서는 아보카도가 멋대로 삶은 달걀과 버터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지방이니까 숲 속의 버터, 그리고 동글동글한 데다(그렇잖.. 더보기
여름을 좋아하는 법, 소다 젤리 본인이 추위를 타는 사람인지 아니면 더위를 타는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다면 방법이 하나 있다. 더우면 덥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하게 되는가? 아니면 추울 때 춥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하게 되는가? 둘 다 그렇다면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전자다. 추우면 아 춥다, 코코아나 수프 같은 따뜻한 게 먹고 싶다, 치즈가 쭉 늘어나는 그라탱도 좋을 것 같은데, 그치만 김치찌개도 괜찮아 등 언제나처럼 잡생각 내지는 먹을 궁리를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우면? 덥다. 덥다고. 덥단 말이야! 왜 더운데 나는 밖에 나와 있는 거지. 왜 여기는 에어컨을 이거밖에 안 틀지. 언제까지 덥지. 덥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수급을 위해 이번 카페에서 다음 카페로 가는 루트를 생각할 .. 더보기
남는 게 어딨어, 열무 스테이크 퀘사디야 퀘사디야를 처음 먹은 곳은 이름도 그리운 베니건스였다. 뭔지도 모르고 인기 메뉴라기에 주문했다가 몬테 크리스토와 함께 고정으로 주문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두툼하게 썰어서 수북한 감자튀김과 함께 나오는 몬테 크리스토와 달리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겉으로 보이는 건 토르티야뿐이지만, 속에 든 건 치즈와 고기니 반드시 맛있을 수밖에 없는 메뉴였다. 유일하게 서러운 점이 있다면 사워크림과 과카몰리가 간장 종지만큼 담겨 나와서 듬뿍 발라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퀘사디야도 타코도 직접 만들어 먹으니 뭐든지 원하는 만큼 얹을 수 있다. 대체로 나의 요리하고 싶은 욕망은 이렇게 원하는 걸 원하는 만큼 먹고 싶다는 욕구에서 기원한다. 과하게, 듬뿍, 너그럽게. 어린 시절의 미묘한 설움 덕분에 퀘사디야를 만들 때.. 더보기
여럿이 뜯어먹기, 체크무늬 마늘빵 체크무늬 마늘빵이 얼마나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인가 하면, 제일 어려운 부분이 이름 짓기다. 커다란 빵에 체크무늬로 칼집을 깊게 넣고 치즈에 향신료, 허브를 잔뜩 뿌려서 굽는 이 빵은 주로 풀어파트 브레드 pull apart bread나 크랙 브레드라고 부른다. 왠지 한글로는 영 와 닿지 않는 이름이다. 뜯어먹는 빵, 금 간 빵, 칼집 넣은 빵. 장황하고 구구절절해서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고르게 넣은 격자무늬를 반영하여 체크무늬 마늘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제일 어려운 부분을 해결했으니 이제 만들어보자. 빵 사기는 이름 짓기에 이어 그나마 두 번째로 어려운 단계다. 왜냐하면 집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 하지만 빵을 제대로 사면 체크무늬 마늘빵은 60% 성공이다. 반드시 통으로 된 빵 한 덩어리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