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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복숭아 썰어 먹은 날 복숭아는 어떻게든 여름을 날 수 있게 해주는 자연의 선심 같은 것. 민둥민둥한 천도복숭아보다는 보송보송 털복숭아, 아삭아삭 딱 딱한 복숭아보다 떨어뜨리기라도 했다가는 큰일 나는 말랑말랑한 물복숭아가 좋다. 달콤하고 촉촉하니 천년만년 쌓인 피로도 순식간에 풀리는 기분. 해를 거듭할수록 서 있으면 시시각각 당이 떨어져서, 이제는 요리를 하다 말고 중간에 복숭아부터 한 조각 잘라먹기도 한다. 갑자기 너무너무 먹고 싶어 지면 물로 박박 씻자마자 싱크 대위에서 즙이 뚝뚝 떨어지도록 베어 물기도 한다. 반달 모양으로 쓱쓱 잘라서 접시에 담은 다음 길게 남은심을 빨아먹는 건 과일을 깎은 사람의 특권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일회용 칼과 포크로 일하는 틈틈이 한 조각씩 잘라먹었다. 그냥 심심해서. 가끔 좋아하는 음식을.. 더보기
어딜 봐도 그림엽서, 체스키 크룸로프 꿈 같은 중세 마을의 풍경을 간직한 체스키 크룸로프. 그냥 고개만 돌리면 어디든지 예쁘다. 오직 셔터 누르는 법밖에 모르는 아마추어라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림엽서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타박타박 걸어서 반나절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자그만 마을은 가까이서 보면 아기자기하고, 햇빛을 받으며 반짝일 때 체스키 크룸로프 성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내가 이걸 보기 위해서 집을 떠나온 거지, 싶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 특히 여기 오르면 모두가 끊임없이 사진을 찍기 바쁘다. 주황빛 지붕이 옹기종기 늘어선 마을 풍경을 찍고, 마을을 휘감으며 흘러가는 블타바 강을 찍고, 체스키 크룸로프를 만끽하는 자신을 찍는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찍었다. 수년 전 가족끼리 광안리 불꽃축제를 볼 때, .. 더보기
르 꼬르동 블루 이스터 초콜릿 특강. 달걀로 만든 토끼! 아니, 분명 이것보다 귀여웠는데. 미묘하게 무서운 얼굴이 되었다. 하비에르 메르카도 제과장의 이스터 버니 초콜릿 공예. 3월 7일 월요일, 정규도 특강도 전부 요리만 들었던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에서 이스터 초콜릿 특강을 들었다. 가끔 요리 수업을 제과 강의실에서 할 때도 있어서 강의실 자체는 익숙했지만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요리 쉐프가 수업 막바지로 갈수록 세 곳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오케스트라를 혼자 연주하는 마에스트로 같다면, 초콜릿을 세공하는 제과 쉐프는 발에 못이 박혔다는 사실도 잊고 대리석을 조각하는 데 여념이 없는 예술가 같다. 물론 초콜릿 공예 하나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초콜릿은 냉장고, 스토브, 진열대 등 주방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바쁘게 움직이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초콜릿 토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