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핑크색 컵케이크 ATM 가게, 스프링클스 in 라스베이거스

 

스프링클스는 비벌리힐즈에 처음 문을 연 컵케이크 전문점으로, 오프라 윈프리 쇼에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졌고……

라고들 하지만 사실 나는 드라마 <번헤드>(그리고 <2 Broke girls>)에 등장한 컵케이크 ATM의 정체를 파헤치다가 알게 되었다. 무려 24시간 내내 언제든지 컵케이크를 살 수 있는, 핑크색의 귀여운 컵케이크 머신이라니! 라스베이거스 여행 일정이 정해지자마자 제일 먼저 알아본 것도 근방에 컵케이크 ATM기가 있는가였다. 물론 영업시간 내에 방문했기 때문에 막상 가서는 ATM기 대신 매장에서 직접 구입했지만.

 

라스베이거스의 스프링클스는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 차를 대고 걸어가기 좋은 곳에 있다. 큰 횡단보도를 건너서 둥근 관람차를 바라보면서 걷다 보면 스프링클스 특유의 동글동글한 로고를 보글보글 장식한 귀여운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물론 요만큼만 걸어도 이미 덥다. 사막이니까. 그러니 사랑스러운 핑크색 컵케이크 ATM기 사진을 이토록 대충 찍은 것도 더워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빨리 레드 벨벳 컵케이크를 먹고 싶었던지.

 

핑크색 컵케이크 ATM기는 야외 테이블과 빨간 의자를 둔 쪽 벽에 붙어있다. 터치스크린에서 원하는 케이크를 고르고 카드로 계산하는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사실 직접 해보지는 않았다. 컵케이크 ATM기를 운영하는 스프링클스에 대해서 알아보다 보니 가게 전체가 맛있어 보여서 더 이상 기계를 써보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새벽녘에 느닷없이 컵케이크 금단증상이 일어났을 때 달려갈 곳이 있다는 건 여전히 좋은 일이다. 미국에서 임신부로 지낼 일이 있다면 한번쯤 새벽에 컵케이크 타령을 할지도 모른다.

 

급하게 사진만 남기고 열두어 발짝 남짓 걸어 나오자 보도 블록에 그려진 별 모양 로고와 다크 초콜릿, 피넛 버터 칩, 스트로베리, 블랙 앤 화이트 등 유혹적인 컵케이크 관련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과자집으로 들어가는 헨젤과 그레텔이 이런 기분일까, 아니 그 남매는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빵조각을 떨어뜨려 둔 거였던가, 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둥둥 뜬 기분으로 종종걸음 쳐 가게로 들어가자 온갖 컵케이크들이 일사불란하게 줄지어 앉아있었다.

 

가게 앞문으로 향하는 발자국마다 별이 찍혀 있다.

왼쪽 아래는 한 입에 쏙 들어가는 미니머핀!

가게 왼편에서는 컵케이크를, 오른편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다. 레드 벨벳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레드 벨벳 와플 콘에 아이스크림을 담아 먹을 수도 있고, 레드 벨벳 컵케이크를 윗부분만 잘라내서 사이에 아이스크림을 끼운 아이스크림 샌드를 먹을 수도 있고, 레드 벨벳 컵케이크를 빵가루처럼 잘게 부숴서 아이스크림에 뿌려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드 벨벳만큼 강한 유혹은 바로 한정’. 스프링클스에서는 매달 그때만 먹을 수 있는 컵케이크를 한정 판매한다. 레드 벨벳 컵케이크처럼 인기 있는 시그니처 제품은 매일 만들지만, 워낙 종류가 많아서 날마다 준비하는 컵케이크가 다르니 꼭 먹고 싶은 제품이 있다면 홈페이지에서 요일과 날짜를 확인하고 찾아가자. 이달의 한정 컵케이크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시그니처인 레드 벨벳, 컵케이크라면 일단 초콜릿을 먹어봐야 하니까 다크 초콜릿, 10월 한정 상품인 스모어와 캐러멜 애플 컵케이크를 주문했다. 몇몇 상품은 한 입에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미니 컵케이크로도 만들어져 있었고, 계산대 앞에는 강아지용 컵케이크도 판매한다고 적혀있었다. 강아지를 위한 컵케이크라니…… 귀엽잖아! 하지만 강아지가 없으니, 대신 여행지의 맛을 싸들고 오고 싶다는 일념으로 레드 벨벳 컵케이크 믹스도 하나 구입했다. 아직 뜯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구워서 스프링클스 컵케이크처럼 프로스팅을 바르는 법을 연습할 예정.

 

 

위쪽에 색깔별로 늘어선 둥근 원통이 컵케이크 믹스. 바닐라, 초콜릿, 레드 벨벳 등 인기 컵케이크 믹스를 종류별로 살 수 있다.

 

계산대 앞의 강아지용 미니머핀. 아마 이건 모형이겠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컵케이크 맛은 어땠을까?

 

레드 벨벳 컵케이크는 지금까지 먹어본 레드 벨벳 케이크 중 단연 최고였다. 딱 알맞게 달고(단맛을 좋아하지만, 미국의 케이크는 설탕이 목에서 오골오골 뭉친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균형이 깨졌을 때가 가끔 있다), 크림치즈 프로스팅이 코코아 향과 어우러져서 부드럽고 촉촉하고 향긋했다. (레드 벨벳 케이크에 관해서는 이전 포스팅(http://nonameprojectstory.tistory.com/2)참조)

바닐라를 살짝 가미한, 아주 진한 다크 초콜릿 베이스에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프로스팅을 바르고 입에서 살살 녹는 질감의 초콜릿 스프링클을 듬뿍 묻힌 다크 초콜릿 컵케이크도 만족스러울 만큼 제대로 초콜릿다웠다. 캐러멜 애플 컵케이크의 베이스는 그래니 스미스 사과가 쏙쏙 박힌 애플 케이크. 향신료를 가미해 익숙한 향이 났지만, 친숙하고 소박한 맛인 컵케이크에 부드러운 캐러멜 크림 프로스팅이 어우러져서 묘하게 섬세하면서 편안한 느낌이었다.

 

예상치 못한 잭팟은 스모어 컵케이크! ‘더 줘some more’라는 말에서 유래한 스모어는 원래 캠프파이어를 할 때 꼬챙이에 끼운 마시멜로우를 모닥불에 구워서 녹인 다음 초콜릿과 그래엄 크래커에 끼워 먹는 간식이다. 10월 한정 컵케이크라서 산 스모어 컵케이크도 이름답게 그래엄 크래커 바닥에 초콜릿 가나슈를 채운 다크 초콜릿 케이크를 올린 다음 마시멜로우 프로스팅을 바르고 그슬린 형태였다. , , 맛있겠군. 그 정도 마음이었지만, 막상 먹으니 윗입술에 마시멜로우가 찐득하게 묻어나면서 달고 고소하고, 부드럽고 포슬포슬했다. 초콜릿과 그래엄 크래커가 케이크라는 형태와 질감을 얻으니 서로 잘 어우러져서, 어느 하나의 맛만 과하게 두드러지지 않아 오히려 원조보다 조화로웠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때나 ATM기에서 살 수 있는 컵케이크가 심지어 맛있다니. 지금 당장 먹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왜 내 몸은 천지만리에 떨어져 있는가.

……컵케이크를 구워야겠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딜 봐도 그림엽서, 체스키 크룸로프  (5) 2016.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