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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어딜 봐도 그림엽서, 체스키 크룸로프

 

꿈 같은 중세 마을의 풍경을 간직한 체스키 크룸로프. 그냥 고개만 돌리면 어디든지 예쁘다. 오직 셔터 누르는 법밖에 모르는 아마추어라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림엽서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타박타박 걸어서 반나절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자그만 마을은 가까이서 보면 아기자기하고, 햇빛을 받으며 반짝일 때 체스키 크룸로프 성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내가 이걸 보기 위해서 집을 떠나온 거지, 싶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 특히 여기 오르면 모두가 끊임없이 사진을 찍기 바쁘다. 주황빛 지붕이 옹기종기 늘어선 마을 풍경을 찍고, 마을을 휘감으며 흘러가는 블타바 강을 찍고, 체스키 크룸로프를 만끽하는 자신을 찍는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찍었다.

수년 전 가족끼리 광안리 불꽃축제를 볼 때, 흥에 겨워 환호하는 나를 보고 아빠가 말했다.

 

요즘 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환호하고 싶다. 우리 때는 모두 모여 큰 소리로 신나게 놀 수 있는 곳이 드물었지. 젊을 때 배워두지 못해서, 이제는 신이 나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자꾸 망설여진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고,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노는 법인가 보다.

 

하지만, 즐기는 방법도 배우기 나름이다. 아빠는 여행을 갈 때면 언제나 열심히 가이드북을 완독하고 꼼꼼히 명소를 둘러보지만, ‘꼼꼼의 속도가 남달라서 성큼성큼 누구보다도 빨리 걸어간 다음 멀뚱히 서서 갈 길을 재촉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몇 년 전, 갑자기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고 여행길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는 예전에 겪었던 사진만 찍으니 정작 다녀온 기억이 잘 안 난다는 고민도 하고, ‘괜찮게 찍은 것 같은데 죄다 흔들렸다며 불평도 했지만 옆에서 바라본 아빠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여행지를 즐기는 사람다웠다.

 

카메라만 들여다보기보다 맨눈으로 순간을 즐겨야 한다, 아니다 남는 건 사진뿐이다, 말들은 많지만 결국 여행하는 사람이 즐거우면 그만이다. 사진을 찍고 싶으면 찍고, 영상을 찍고 싶으면 찍고,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리고,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으면 보면 된다. 사진을 찍느라 시안 재래시장을 걸어 다닌 기억이 사라지고, 드레스덴 사진에 죄다 검지손가락이 찬조출연을 해서 허탈한 웃음을 지을지언정, 적어도 카메라를 만난 아빠는 즐겁고 신이 난다. 이것이 아빠가 환호하는 법이다.

 

아빠가 바라본 체스키 크롬노프는, 둥그런 아치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