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는 어떻게든 여름을 날 수 있게 해주는 자연의 선심 같은 것. 민둥민둥한 천도복숭아보다는 보송보송 털복숭아, 아삭아삭 딱 딱한 복숭아보다 떨어뜨리기라도 했다가는 큰일 나는 말랑말랑한 물복숭아가 좋다. 달콤하고 촉촉하니 천년만년 쌓인 피로도 순식간에 풀리는 기분. 해를 거듭할수록 서 있으면 시시각각 당이 떨어져서, 이제는 요리를 하다 말고 중간에 복숭아부터 한 조각 잘라먹기도 한다.
갑자기 너무너무 먹고 싶어 지면 물로 박박 씻자마자 싱크 대위에서 즙이 뚝뚝 떨어지도록 베어 물기도 한다. 반달 모양으로 쓱쓱 잘라서 접시에 담은 다음 길게 남은심을 빨아먹는 건 과일을 깎은 사람의 특권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일회용 칼과 포크로 일하는 틈틈이 한 조각씩 잘라먹었다. 그냥 심심해서. 가끔 좋아하는 음식을 이상하게 마음 가는 대로 먹어보는 것도 혼자서 일할 때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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