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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잃어버린 풍미를 찾아서, 올리브 마리네이드(정연주)

 

잃어버린 풍미를 찾아서, 올리브 마리네이드(정연주)

 

마르셀 프루스트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고 나서 장장 7, 16권에 달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와인을 마실 때마다 겪어본 적도 없는 가면무도회며 춤추는 소녀의 정경을 떠올린다. 만일 바닷물에 발 한 번 담가본 적 없는 손님이 지중해의 꿈을 꾸도록 만들고 싶다면, 여기 단 한 가지 해결책이 있다. 바로 올리브 마리네이드다.

 

올리브는 날로 먹을 수 없는 과실이다. 쓴맛을 내는 석탄산 계열 물질 때문에 도저히 나무에서 따자마자 베어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알칼리성 용액에 올리브를 담가서 쓴맛을 제거하고 발효시켜서 먹을 수 있게 만든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 <토마토 랩소디>에는 단단한 녹색 올리브, 농익은 보라색 올리브 등을 단지에 담아서 각종 방식으로 절이는 여인이 등장한다. 올리브를 소금이며 월계수를 넣은 용액에 넣어 절이면서 발효시키는 방식이다. 요즘 공장에서는 수산화나트륨 용액을 사용한다는데, 어떤 방법이든 쓴맛을 벗어던지고 발효를 끝낸 올리브는 마티니 술잔부터 피자 토핑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소에 감초처럼 등장한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통조림 혹은 병조림으로 승화한 올리브에는 흔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서 접하는 맵싸할 정도로 톡 쏘는 풍미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통조림 올리브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은 신기할 정도로 양 극단에 위치한 강력한 풍미를 선사한다. 질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은 풀향과 과일향이 가득해서 삼키는 순간 타는 듯이 목구멍을 쓸고 지나간다. 반면 통조림 올리브는 발효 과정을 거치며 신선한 자연의 향은 잃었지만 치즈처럼 겹겹이 깊어진 복합적인 맛과 탄탄한 질감을 선사한다.

 

올리브 마리네이드는 한 나무의 가지와 뿌리에서 태어나기라도 한 듯이 다른 매력을 지닌 통조림 올리브와 올리브 오일을 합해서, 올리브가 잃었던 신선함을 되찾게 만드는 최적의 조리법이다. 짜장을 만들면서 라드에 돼지고기를 볶고 녹여낸 오리 기름에 오리 다리를 푹 담가 콩피를 만들듯이, 두 올리브의 만남은 정작 나무에 달려 있을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멋진 질감과 섬세한 풍미를 갖춘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낸다.

 

음식에 대비하기에는 어딘가 탐미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면이 없지 않으나,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기름을 용매로 사용하여 아름다운 소녀들의 향기를 추출한다. 기름은 향기를 흡수하기에 더없이 좋은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올리브 오일에 온갖 향기로운 부재료를 첨가하면 화려한 꽃다발처럼 싱싱한 풍미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원숙함을 얻은 대신 싱그러움을 잃었던 올리브에 새로운 맛을 주입한다.

 

 

, 지중해가 갖춘 모든 풍미를 올리브에 덧입히는 올리브 마리네이드를 만들어보자. 원하는 올리브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더불어 껍질을 박박 씻은 레몬, 맵싸하고 은은한 생마늘, 향긋한 허브를 준비한다. 타임, 로즈마리, 오레가노, 무엇이든 상관없다. 말린 허브를 넣어도 무방하지만 운 좋게 화분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제거한 후 가지째 사용하자. 그릇에 담을 때 장식처럼 얹으면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계량을 하려고 머리를 쓸 필요는 없다. 다만 보관에 신경이 쓰인다면 담을 통을 한 번 소독하자. 만일 너무 짜서 올리브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끓는 물에 한 번 데쳐서 사용하면 좋다. 우선 통조림 또는 병조림에서 올리브를 꺼낸다. 링처럼 썬 올리브 슬라이스보다 온전히 제 형태를 유지하는 통올리브를 쓰는 편이 낫다. 끓는 물에 데치거나 흐르는 물에 가볍게 씻어서 물기를 제거한 다음 통에 담는다. 깨끗이 씻은 레몬과 마늘을 저며서 넣는다. 올리브가 서른 개쯤 된다면 레몬은 원형 슬라이스 두어 조각, 마늘은 반 쪽 정도가 적당하지만 취향에 따라 원하는 만큼 넣자. 그리고 원하는 허브를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제거한 다음 줄기째 집어 넣고 후추를 갈아서 뿌린다. 그리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올리브가 잠길 만큼 붓는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오일을 콸콸 부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반쯤 채우고 중간에 두어 번 뒤집어주곤 한다. 뚜껑을 단단히 닫은 다음 사정없이 흔들어서 잘 섞은 후 냉장고에 보관한다. 짧으면 서너 시간, 길면 삼사일 정도 보관할 수 있다.

 

차가운 냉장고에 넣어두기 때문에 올리브 오일이 굳어서 허옇게 달라붙게 되지만, 손님맞이를 하기 전에 미리 그릇에 옮겨 실온에 두면 금세 투명하게 반짝거리니 걱정하지 말자. 그릇에 담을 때는 오일까지 넉넉히 붓고 구운 빵을 곁들여서 찍어 먹도록 한다. 레몬과 마늘, 허브의 풍미를 듬뿍 머금은 올리브 오일은 따로 발사믹 식초를 뿌리지 않아도 충분히 빵에 멋진 향을 선사한다. 새콤한 피클과는 또다른 매력으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사이드 메뉴다.

Writing&Drawing 정연주

Picture 이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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