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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레몬을 온전히 즐기는 법, 레몬 콩피

 

[정연주] 레몬을 온전히 즐기는 법, 레몬 콩피

 

Lemon Confit

 

레몬은 껍질이 생명이다. 즙만 시원하게 짜 내도 상큼한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지만, 요리에 깊고 은은한 레몬향을 더하려면 반드시 껍질에 가득한 향기 오일이 필요하다. 산뜻한 레몬 케이크를 구울 때, 채소와 허브를 듬뿍 넣은 오일 파스타에 깊이를 더할 때, 고기에 감귤향을 가미해서 마리네이드할 때, 싱그러움이 두드러지는 샐러드를 만들고 싶을 때, 일단 제스터를 손에 쥐자.

 

레몬 껍질을 갈아 넣을 때 하얀 속껍질이 들어가면 쓴맛이 나니까, 가능하면 전용 제스터를 사용하는 편이 좋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은 마이크로플레인의 손잡이가 길쭉한 제스터다.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하면 칼을 비롯한 온갖 조리도구가 든 가방을 받는데, 안타깝게도 제스터는 기본 도구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졸업할 때까지 구입하지 못해서 항상 조교 선생님이 깨끗하게 돌려 쓰라고 빌려준 제스터를 조심조심 사용했다. 신혼여행길에 들어간 윌리엄 앤 소노마에서 제스터를 냉큼 구입했을 때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그전까지는 구멍이 자잘한 작은 강판을 썼지만, 전용 제스터가 있으면 정말 좋다. 무엇보다 편하지만, 사실 그냥 제스터로 레몬을 쓱쓱 갈아내고 있는 나 자신이 멋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단 제스터를 구입했다면 레몬 제스트를 손쉽게 갈아낼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시중에 나온 레몬에는 왁스며 농약이 묻어있어서 맘 편히 사용하려면 베이킹 소다로 문대거나 굵은 소금으로 문지르고 심지어 끓는 물에 데치는 등 온갖 과정을 거치라고들 한다. 미국 요리책에는 종종 무왁스 레몬을 구입해서 사용하라고 적혀있지만 그마저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끓는 물에 데치는 방법은 껍질이 물렁물렁해지고 향이 떨어져서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고, 베이킹 소다나 굵은 소금을 주로 사용하지만 왠지 문지르면서 향이 피어 오르면 괜히 그것마저도 아깝다.

 

그래서 나는 아예 레몬 콩피를 만든다. 옛날 문학 느낌으로 말하자면 레몬당졸임 혹은 레몬설탕졸임이라고 할까. 레몬 껍질을 제스트보다 훨씬 큼직하게 벗겨내서 데친 다음 시럽에 졸여 만드는 재료다. 일단 만들고 나면 적당한 크기로 자르거나 다져서 각종 요리나 제과, 소스 등에 다양하게 사용하기 좋다. 물론 조리법에 따라 반드시 제스트를 넣어야 할 때도 있지만, 콩피를 사용하면 향기와 더불어서 진한 맛과 독특한 질감까지 더할 수 있다. 게다가 반복작업이 대부분이고 실패할 일도 없어서 한 번 익숙해지면 무념무상으로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작년 겨울, 유자 한 상자 분의 껍질을 벗겨내서 콩피를 만들던 모습.

 

(여기서 벗겨낸 레몬 껍질의 상태는 노네임 포럼 <레몬을 먹는 n가지 방법> part.5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 모양 참조)

(주소: http://nonameforum.tistory.com/entry/TOPIC2-레몬을-먹는-n가지-방법-S)

 

준비물은 레몬, 설탕, . 필요한 도구는 감자칼과 과도, 냄비, 체다. 먼저 레몬을 흐르는 물로 깨끗하게 씻는다. 찜찜하면 베이킹 소다나 굵은 소금으로 문질러 닦는다(개인적으로는 후에 끓는 물로 데치는 과정이 있어서 흐르는 물에 박박 닦기만 한다). 감자칼을 이용해서 노란 껍질 부분을 넓적하게 벗겨낸다. 이때는 아직 하얀 속껍질이 붙어있어도 괜찮다. 레몬을 돌려 가면서 모든 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뒤집어서 과도로 하얀 속껍질을 저며내 버린다. 냄비에 물을 부어 팔팔 끓으면 얇고 깨끗한 레몬 껍질을 넣고 데친다. 체에 걸러낸 다음 냄비에 다시 새 물을 부어서 데치기를 두 번 반복한다. 그러니까 총 세 번이다. 껍질째 먹기 때문에 쓴맛을 제거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제 세 번 데친 레몬 껍질을 빈 냄비에 넣고, 설탕과 물을 2 1 비율로 부은 다음 불에 올려 설탕을 녹이고 끓인다. 레몬 껍질이 투명해질 때까지 조린다. 뜨거울 때 병에 담아서 밀봉해서 냉장 보관하거나 아예 얼린다. 이때 나온 시럽도 콩피와 같이 쓸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레몬 껍질을 예쁘게 채썰어서 생강과 같이 콩피하거나, 육수 등을 넣고 조려서 소스 재료나 가니시 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레몬 콩피는 단독으로 써도 좋고, 제스트와 병용해도 좋다. 머핀이나 파운드케이크 등 베이킹을 할 때 반죽에 다져 넣고, 구운 다음 위에 시럽을 바르고 채썬 콩피를 얹어보자. 잘게 다져서 쿠스쿠스 샐러드 등에 넣으면 색다른 풍미를 가미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보자. 나만의 추천 메뉴는 유자 콩피를 다져 넣은 크림치즈를 바르고 구운 파프리카와 훈제 연어를 얹은 크로와상 샌드위치다.

 

오른쪽 끝부분에서 크림치즈에 다져 넣은 유자 콩피가 미세하게 엿보인다.

 

, 물론 레몬 콩피 테크닉은 다른 모든 감귤류에 활용할 수 있다. 지난 겨울에는 유자 한 박스를 사서 커다란 냄비 가득히 유자 껍질을 데치며 콩피를 만들었는데, 다 조리고 나니 완성품은 주먹만큼 나와서 매우 가슴이 아팠다. 올해 겨울에도 가슴이 아플 예정이다.

Blog: 같은 주제 아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모임, 『노네임 포럼』 http://nonameforum.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