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식 이야기

에버 델리의 인생 샌드위치, BLPT

 

 

[정연주] 에버 델리의 인생 샌드위치, BLPT

 

고백하건대 나는 찐감자를 밥이나 빵과 맞교환을 하면 했지, 감자를 좀처럼 반찬으로 먹지 않는다. 탄수화물이 겹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니까! 감자 러버로서 감자는 메인으로, 죄책감 없이 즐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느 순간 확립한 원칙이다.

 

하지만 서촌에 자리한에버 델리 BLPT 샌드위치 앞에서는 하찮은 내 원칙 따위가 설 곳이 없다. 보통은 베이컨(B)과 양상추(L), 토마토(T)를 넣은 BLT 샌드위치를 주로 판매하지만, 에버 델리에서는 치즈와 멋지게 어우러지는 감자(P)를 넣어서 BL’P’T를 선보인다. 후배의 인생 최고의 샌드위치라는 말에 그렇다면 먹어봐야지, 하며 호기롭게 맛본 결과.

 

, 빵과 맞교환을 하지 않으면 감자를 먹지 않아? 장인의 솜씨 앞에서 건방지기 짝이 없는 태도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BLT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바로 감자였던 것이다. 부피감을 더해서 속이 든든한 것은 물론, 감자와 치즈의 그윽함이 함께 어우러져서 맛의 결이 훨씬 깊어졌다. 양상추와 토마토의 비율이 높지만 감자가 따뜻함을 가미해 먹고 나서 속이 차갑거나 허해지지 않는다. 감자 덕분에 질감이 부드러워졌으니 씹는 맛도 훨씬 매력적이다. 가게 안에서 제대로 구운 파삭파삭한 빵을 만끽하는 쪽이 최고지만, 포장해서 식은 다음에 먹어도 맛은넘사벽이다. 식은 감자 특유의 질감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도 한 몫 하겠지만.

 

아마 BLPT의 유일한 단점은 다른 맛있는 메뉴를 주문하기 힘들어진다는 점뿐일 것이다. ‘일단 BLPT 하나 주문하고라고 생각해버리니 도대체 빈 속에 다른 메뉴를 집어넣는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 양념한 소고기에 치즈를 녹인 필리치즈 샌드위치, 핫도그번에 칠리 소스와 소시지를 끼운 핫 칠리 독, 속이 든든한 치킨감자스프에 노른자의 녹진함이 화룡점정을 찍는 시저샐러드까지 골고루 맛보려면 아예 친구들을 이끌고 여럿이 가는 편이 낫다. 가까운 곳에 1호점이나 마찬가지인슬로우 브레드 에버를 함께 운영하는 문혜영 셰프가 샌드위치마다 어울리는 빵은 물론 재료 조합까지 꼼꼼하게 손본 만큼, 어떤 메뉴도 맛을 보장한다.

 

통인시장 옆길, 리모델링 전의 서까래를 다듬어 만든 테이블이 손님을 기다리는 곳. 감자를 식단의 영양소 황금비율을 해치기 쉬운 재료에서 잠재력 넘치는 히든 스타로 인식하게 만든, 인생을 바꾼 샌드위치 BLPT가 있는 에버 델리다.

Blog: 같은 주제 아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모임, 『노네임 포럼』 http://http://nonameforum.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