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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바다에 연기를 입히면, 훈제굴과 맥주 비네그레트

꼬르동 블루 기초반에서 간신히 칼질이나마 하고 있을 때 제일 기다리던 수업은 중급반 후반부의 아틀리에였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 훈제연어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꼬르동 블루에서는 기초부터 상급까지 모든 수업에서 사용하는 육수 및 기타 재료를 직접 만드는데, 거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다시피하는 훈제 삼겹살은 물론이고 끄트머리 한조각까지 남김없이 입에 넣게 되는 훈제연어도 예외가 아니다. 이말인즉슨 채소 스프 한 그릇 만드는 데 두 시간 반이 걸리는 기초 시절부터 끝내주는 훈제연어를 먹으며 중급에 가면 이걸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셰프의 희망고문을 듣게 된다는 뜻이다.

요리야 원래 대부분 굽고 데쳐서 재료의 형질을 바꾸는 과정이라지만, 훈제는 특히 어딘가 연금술 같은 면이 있다. 매캐한 연기를 입고 존득한 크러스트를 얻으면 무슨 음식이든 근원 없이 홀로 불쑥 탄생한 태초의 존재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훈제의 매력은 손을 뻗지 못하는 곳이 없어서, 세상은 훈제 치즈부터 훈제 칵테일까지 아직 맛봐야 할 음식 버킷리스트를 끝없이 생산한다. 훈제 치즈야 먹어보지 못한 것도 아니지만 뭐랄까, 훈제 연어나 베이컨도 그렇듯이 오늘 아침에 먹었더라도 내일 아침 다시 먹어보고 싶다면 다시 버킷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고나 할까. 

그러니 겨울이면 겨울마다 찾아오는 생굴도 매캐한 연기를 쐬이고 나면 또다른 의미로 사랑해 마지않는 요리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탱탱한 순두부형 포장지에 가득 담긴 생굴을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만 것이다. 꼬르동 블루에서 수업을 할 때는 연어 반 마리를 오븐에 넣고 작업했지만, 훈제기 없이 소규모로 훈제하기를 손에 익히면 조금 더 자주 편하게 많은 재료를 훈제해볼 수 있겠지. 연어 반 마리보다 훨씬 작은 굴은 첫 소규모 훈제 시도에 잘 어울리는 재료다. 

소규모 훈제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방송이었다. 철제 과자 상자에 철망을 깔고 가스레인지에 올려서 연어 필레를 온훈제로 익히는 과정을 다시 한번 복습한 다음 밀폐가 잘 되는 철제 사각틀을 준비했다. 굴은 절반은 간장 염지액에 삼십 분간 담그고 나머지는 생굴로 준비하여 철망 위에 간격을 띄워가며 얹었다. 수월한 뒷정리를 위해 사각틀 바닥에 쿠킹포일을 깔고 훈제칩을 부숴서 한 켜 깐 다음 토치로 사정없이 태웠다. 이때 불길이 붙을 정도로 시간을 들여서 태워야 한다. 불이 적당히 붙은 다음 훅 꺼트려서 눈을 맵게 하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바로 굴을 얹은 철망을 올리고 뚜껑을 닫는다.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연기가 사라질법 하면 철망을 들어내고 다시 훈제칩을 태워 연기를 낸 다음 굴을 얹고 뚜껑을 닫는다. 50분간 이 과정을 네 번 정도 반복한 다음 굴을 꺼낸다. 그리고 망에 얹은 채로 냉장고에 넣어 두어 시간 정도 말린다. 

결과물은? 보관한 통의 뚜껑을 열면 훈제향이 훅 올라오고, 먹어보면 코끝에서 미미한 훈제향이 감돌지만 원하는만큼 강력하지 않았다. 첫 시도인 점을 감안하면 만족도는 75% 정도. 다만 과정에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세 가지 정도 있으니 희망은 아직 남아있다. 굴의 계절이 지나기 전에 다시 도전할 것. 이번 겨울의 숙제다.

홀로 마음먹은 숙제를 마스터하려면 본의아니게 생굴을 질릴 때까지 먹게 되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해산물에 더없이 잘 어울려서 입맛에 착착 붙는 완벽한 서양식 소스가 있다. 에일 맥주로 만든 맥주 비네그레트와 짭짤상큼한 푸타네스카로, 샐러드나 냉파스타 등 차가운 애피타이저를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일명 필살기. 한평생을 해산물 탐닉에 바치고 계신 한 어르신(부산, 66세)의 감탄을 자아낸 일급 레시피다. 평범한 생굴에 슬슬 매너리즘을 느낀다면 꼭 한번 만들어보기를 추천한다. 불을 일절 쓰지 않고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좋아, 굴 처치용 레시피도 정리했으니 이제 다시 베란다로 나가서 토치를 손에 들어도 되겠군. 소규모 훈제의 달인이 될 때까지는 간헐적으로 매캐한 나날을 보내게 될 성 싶다.


맥주 비네그레트

훈제한 생굴을 여기에 폭 담갔다가 소복히 쌓는 방식으로 세팅했지만 그냥 위에 뿌리거나 곁들여도 상관없다. 결정적인 맛내기 비결은 레몬즙! 그것도 방금 짠 신선한 레몬즙을 넣어야 굴을 최상의 맛으로 즐길 수 있으니 차라리 맥주를 빼더라도 레몬은 꼭 사오자. 다른 해산물과도 궁합이 좋은 소스다.

재료

에일 맥주 2큰술, 잘게 다진 셜롯 1큰술, 꿀 1큰술, 레몬즙 1/2개 분량, 홀그레인 머스터드 1작은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3큰술, 소금•후추 약간씩

만드는 법

1 모든 재료를 볼에 넣고 잘 섞는다. 

푸타네스카 소스

감칠맛이 터져나오는 재료를 죄다 모아서 살짝 재우기만 하면 되는 소스로, 석화 대신 알만 굴러다니는 순두부형 봉지에 담은 굴을 사도 이것만 올리면 화려해진다. 남으면 삶은 파스타와 버무려 먹어도 좋다. 

재료

올리브 1/2컵, 방울토마토 10개, 마늘 1쪽, 케이퍼 1작은술, 앤초비 페이스트 1/2작은술, 평엽파슬리 2줄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1큰술, 소금•후추 약간씩

만드는 법

1 올리브는 씨를 빼고 잘게 다진다. 토마토와 마늘, 케이퍼도 각각 잘게 다진다. 평엽 파슬리는 잎만 떼서 잘게 다진다. 

2 모든 재료를 볼에 넣고 잘 섞은 다음 10분 정도 숙성한다. 굴에 올려 낸다. 

Writing&Picture 정연주

Blog: 같은 주제 아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미식 웹진형 블로그, 『노네임 포럼』 http://nonameforum.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