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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무엇보다 버섯다운 수프를 끓이리

동화 속 나그네는 단추 하나로 맛있는 수프 한 단지를 끓였다던가. 온 동네 부엌의 자투리 재료를 끌어 모아서 폭폭 끓여 여럿이 나누어 먹었으니 맛있는 수프의 기본 요소를 전부 갖춘 셈이다. 수프란 건 그렇다. 기본만 알면 얼마든지 그때그때 냉장고 속 사정에 맞춰 적당히 맛있게 끓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버섯 수프만큼은 성에 차게 끓이려면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평소 수프를 끓이는 법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수프는 토마토나 채소 베이스의 맑은 수프가 아닌 부드러운 크림 수프다. 일단 기본적으로 감자와 양파를 준비한다. 그리고 수프의 주인공인 채소를 결정한다. 옥수수, 브로콜리, 렌틸, 단호박 등이 되겠다. 모든 채소를 잘게 썰어서 버터에 달달 볶다가 닭육수를 붓고, 아니 맹물과 치킨스톡 큐브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서 부드럽게 익으면 곱게 간다. 잔뜩 만들어서 냉동해 둔 화이트 루를 조금 잘라서 넣고, 크림과 치즈를 더한 후 잘 섞어서 한소끔 끓인다. 어지간히 어떤 재료를 넣어도 그다지 망칠 염려가 없다.

 

그런데 똑 같은 방식으로 버섯 수프를 끓이면 대체 어디가 버섯인가 싶은 평범한 감자 수프가 되어버린다. 씹는 맛을 더하겠답시고 버섯 뒥셀까지 만들어서 넣어도 그 모양이다! 맛은 있지만 어디로 보나 아주 잘 만든 시판 양송이 분말 수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버섯의 비 온 뒤 숲 속 같은 향도 맛도 희미하게 지워지고, 되려 눅눅하게 엉기는 진득한 질감만 남는다. 버섯이 버섯답게 느껴지는 수프를 끓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버섯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시중에서 가장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새송이버섯은 부피는 넉넉하지만 향이 떨어진다. 이때 부족한 향을 보충해줄 수 있는 버섯은 바로 표고버섯이다. 말린 표고는 일년 내내 구하기 쉽고 보존하기도 좋지만 특유의 존재감이 너무 뚜렷해서 풍미를 해치니 되도록 신선한 생 표고버섯을 사용하자. 질긴 기둥은 뜯어내고 갓만 잘게 송송 썬다. 여기에 좋아하는 종류의 버섯을 한 가지 정도 더 추가하자.

 

모든 버섯은 송송 썬 다음에 버터, 타임과 함께 냄비에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물이 생길 때까지 천천히 볶는다. 물이 흥건하게 나오면 버섯이 다시 즙을 흡수하고 갈색이 될 때까지 달달 볶는다. 놀랍게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이 과정을 상당히 단축할 수 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나온 버섯 물은 절대 버리지 말고 달달 볶은 다음에 부어야 수프에서 진한 맛이 난다.

 

버섯을 달달 볶고 나면 감자를 넣고 살짝 볶은 다음에 육수를 붓고 한소끔 끓인다. 감자가 부드럽게 익으면 스틱 블렌더로 곱게 간다. 원래 이 단계에서 화이트 루를 넣곤 하지만, 버섯 수프에 풀처럼 엉기는 화이트 루를 넣으면 풍미가 둔해지니 과감히 빼 버리자. 만들기도 귀찮으니까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크림을 약간 붓고 파르메산 치즈를 갈아 넣어 잘 섞는다.

 

이렇게만 만들어도 버섯 풍미가 넘치는 수프를 먹을 수 있지만, 버섯 뒥셀과 레몬 프로마쥬 블랑을 더하면 완성도가 단번에 뛰어오른다.

 

버섯 뒥셀은 잘게 다져서 수분이 전부 흘러나왔다가 증발하고 맛만 다시 흡수될 때까지 버터에 볶은 버섯이다. 다질 때 속도를 내서 버섯이 갈변하기 전에 볶아야 한다는 점만 빼면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기본 버섯 조리법이다. 겉보기에 아름답지는 않지만 감칠맛이 농축된 상태라서 닭고기에 채워 넣거나 퍼프 패스트리에 돌돌 말아 굽는 등 여기저기 다양하게 쓰인다. 이 뒥셀을 수프에 넣으면 쉽게 말해 시판 양송이 분말 수프를 먹을 때 중간중간 씹히는 버섯 건더기가 된다. 버섯 수프를 곱게 간 다음에 미리 만들어 둔 버섯 뒥셀을 넣으면 수프에 씹는 맛과 농축된 버섯 향을 더할 수 있다.

 

하지만 버섯 뒥셀은 귀찮으면 생략해도 상관없다. 세상에는 굳이 수프에 씹히는 맛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레몬 프로마쥬 블랑은, 볼 하나만 있으면 순식간에 만들 수 있으니까 꼭 한번 부디 만들어보자. 프로마쥬 블랑은 신선한 생치즈로 사실 구하기 쉽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시중에 간간이 눈에 띄고 있다. 없으면 사워크림이나 무가당 그릭 요거트로 대체해서라도 꼭 만들어보자. 볼에 프로마쥬 블랑을 넣고, 레몬 제스트를 뿌리고, 레몬즙을 넉넉히 짜 넣고, 후추를 갈아넣은 다음, 소금을 넉넉히 뿌려서 새콤짭짤하게 간을 맞춘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부드럽게 푼 다음 그릇에 담은 버섯 수프 가운데에 툭 떨어뜨리자. 무심한 듯 눈에 띄는 데코레이션이다. 레몬 제스트를 조금 더 갈아 흩뿌리고 타임 줄기를 얹으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꼭 만들어봐야 할 이유는 겉보기보다 맛이다. 새콤한 레몬즙과 상큼한 레몬 향이 버섯 특유의 쿰쿰한 대지의 풍미를 날 선 듯이 돋보이게 해준다. 나는 신 음식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데, 하고 넘어가면 평생 모를 안타까운 맛이다.

 

수프 하나 먹으려고 이렇게 공을 들일 일인가? 물론 그럴 일이다! 이를테면 저녁 메뉴는 버섯 수프라고 먼저 결정한 다음 메인은 뭐가 어울릴 지 결정할 맛이다. 아니면 구운 빵만 산처럼 쌓아서 수프 한 냄비와 함께 내놓고 싶은 맛이다. 버섯 삼종, 레몬과 프로마쥬 블랑. 냉장고에 상시 구비하고 싶은 재료는 계속 늘어만 간다.

 

 

 

수프를 버섯답게

완벽한 버섯 수프

 

재료

새송이버섯 200g, 생 표고버섯 5, 느타리버섯 70g, 감자 1(), 버터 15g, 타임 1줄기, 닭육수 800ml(또는 물 800ml와 치킨스톡 큐브 1), 크림 1/2, 파르메산 치즈 20g,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버섯 뒥셀 재료

양송이버섯 또는 새송이버섯 100g, 버터 10g, 타임 1줄기,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레몬 프로마쥬 블랑 재료

프로마쥬 블랑 1/2, 레몬 1/2,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드는 법

1 버섯 뒥셀을 만든다. 양송이버섯은 곱게 다진다. 중간불에 달군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녹으면 버섯과 타임을 넣고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 후 중간약불로 불을 낮추고 버섯에서 물이 나올 때까지 볶는다. 수분이 증발하고 버섯이 갈색을 띨 때까지 마저 볶은 후 밀폐용기에 담아 따로 보관한다.

2 수프에 넣을 버섯을 손질해 전부 잘게 썬다. 표고의 줄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감자는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고 잘게 깍둑 썬다.

3 냄비를 중간불에 달군 후 버터를 넣고 녹으면 버섯과 타임을 넣는다.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린 후 물이 나왔다가 증발하고 버섯이 갈색을 띨 때까지 볶는다. 감자를 넣고 살짝 볶은 후 닭육수를 붓고 한소끔 끓인다. 감자가 익을 때까지 뭉근하게 익힌 다음 스틱블렌더로 곱게 간다. 크림과 치즈를 넣고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한 후 잘 섞어 한소끔 더 끓인다. 필요하면 육수나 우유로 농도를 조절한다.

4 레몬 프로마쥬 블랑을 만든다. 볼에 프로마쥬 블랑을 넣고 레몬 반 개의 제스트를 갈아 넣는다. 레몬즙을 짜 넣고 후춧가루를 뿌린 후 소금으로 새콤짭짤하게 간을 맞춘다.

5 수프에 버섯 뒥셀을 원하는 만큼 넣고 뒥셀이 데워질 때까지 익힌다. 그릇에 수프를 담고 레몬 프로마쥬 블랑을 얹는다. 여분의 레몬 제스트와 타임을 뿌려 낸다.

Writing&Drawing 정연주

Blog: 같은 주제 아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미식 웹진형 블로그, 『노네임 포럼』 http://nonameforum.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