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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샌드위치의 마리아주 다시는 탄수화물을 무시하지 마라 빵과 샌드위치의 마리아주 탄수화물은 마성의 물질이다. 이유를 알 길 없는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와 오로지 빵집을 찾기 위해 버스며 기차에 오르는 전국 빵순이들의 시도때도 없는 금단증상은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덕분에 지방과 더불어 다이어터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탄수화물을 배척하라! 아마 중독성이 더 강해서인지, 묘하게 지방보다 더 큰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런 탄수화물이 지닌 마성의 매력이 제일 두드러지는 음식은 바로 샌드위치다. 재료만 적절히 배치하면 균형잡힌 식단이 된다는 샌드위치지만, 만일 여기서 빵을 뺀다면 무엇이 될까? 그냥 샐러드다. 때로는 필리 치즈 스테이크처럼 빵을 빼면 그라탕 비슷한 메뉴가 되기도 하지만, 생야채.. 더보기
빙수의 공식, 빙수101 [TOPIC:7] 빙수의 공식, 빙수101(정연주) 한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고수하고 찬물 샤워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람마저 체면불구하고 얼음물을 들이키게 만드는 역사적인 더위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체력도 의욕도 송두리째 앗아간 뜨거운 열기여, 내 비록 올해는 이제나 끝날까 저제나 멈출까 허우적대며 굴복하고 말았지만 다음부터는 갖은 방법으로 물들이고 치장한 얼음 가루를 흩뿌리며 너희를 물리치고 말리라. 이토록 격앙된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폭염에 뇌 한 쪽이 익어버린 모양이다. 예상치 못한 더위에 미처 방어 태세를 갖추지 못하고 흐물흐물 녹아버렸던 이번 여름, 칼을 가는 심정으로 어떤 빙수든 만들어낼 수 있는 빙수의 공식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원하는 맛을 내는 요소.. 더보기
잃어버린 풍미를 찾아서, 올리브 마리네이드(정연주) 잃어버린 풍미를 찾아서, 올리브 마리네이드(정연주) 마르셀 프루스트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고 나서 장장 7편, 총 16권에 달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와인을 마실 때마다 겪어본 적도 없는 가면무도회며 춤추는 소녀의 정경을 떠올린다. 만일 바닷물에 발 한 번 담가본 적 없는 손님이 지중해의 꿈을 꾸도록 만들고 싶다면, 여기 단 한 가지 해결책이 있다. 바로 올리브 마리네이드다. 올리브는 날로 먹을 수 없는 과실이다. 쓴맛을 내는 석탄산 계열 물질 때문에 도저히 나무에서 따자마자 베어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알칼리성 용액에 올리브를 담가서 쓴맛을 제거하고 발효시켜서 먹을 수 있게 만든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에는 단단한 녹색 올리브, 농익은 보라색 올리브 등.. 더보기
한여름의 포도주스 한여름의 포도주스(정연주) 자취생에게 밥과 라면은 주식, 김치와 참치는 주식을 먹기 위한 부식, 그리고 과일은 사치품이다.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살 수 있을까? 자취를 하던 대학생이 이상하게 잇몸에서 출혈이 심해 치과에 갔더니 괴혈병이라더라, 이제 돈가스에 딸려 나온 양배추까지 집어 먹는다더라, 괴담 같지만 젊음을 갈아넣다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대학가 원룸촌, 최소한의 영양소로 끼니를 때우며 바쁘게 오가는 자취생이 모여 사는 동네 마트의 과일 코너는 뭔가 다르다. 과일의 종류가 많지 않을 뿐더러 최대한 소분해서 천 원 단위로 포장되어 있고, 그나마도 제때 다 팔리지 않아 무르고 상해 있기 일쑤다. 그렇게 성한 부분만 뜯어내 포장한 감귤 쪼가리나 바닥이 물크러진 자두 세 알이라.. 더보기
긴급 처방전, 머그컵 브라우니 [TOPIC:4] 긴급 처방전, 머그컵 브라우니 (정연주) 어째서 머그컵 브라우니를 만들었는가. 자고로 베이킹이란 오븐으로 하는 것이니, 할 거면 제대로 오븐에서 굽고 아니면 차라리 팬케이크류로 전향해야 옳다. 요리마다 최적의 도구가 있기 마련이니까. 냄비에 끓여야 제격인 라면을 프라이팬에 삶아놓고 맛이 왜 이러냐고 투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뜸 달리는 ‘오븐 없는데’ 식의 댓글을 보면 신물이 난다. 오븐 비싼 거, 알지. 내가 쓰는 오븐도 비용·공간 문제로 미니오븐이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도구일 뿐이니, 오븐이 없으면 있는 도구로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요리하면 된다. 그런데 왜 굳이 머그컵과 전자레인지라는 조합으로 머그컵 브라우니를 만들었는가? 브라우니는 특별하다. 어디가? 성질 급할 .. 더보기
노른자 찬양론자의 노른자 간장절임 노른자 찬양론자의 노른자 간장절임(정연주) 누군가를 위해 달걀을 삶거나 데치거나 부칠 때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것은 바로 노른자의 상태다. 고작해야 무게 50g인 달걀 속에서 달랑 3분의 1의 비중을 차지하는 노른자. 날달걀부터 시작해서 회색빛이 돌도록 하염없이 익힌 과완숙달걀에 이르기까지 달걀의 질감 변화는 워낙 스펙트럼이 넓지만, 그 중에서도 노른자의 태세 전환은 무서울 정도다. 날달걀에서 촉촉한 반숙 상태까지는 어디에 얹어도 스며들고 퍼지면서 어우러진다. 이 시점 이후부터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아니, 이렇게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를 굳이 퍽퍽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완숙 애호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노른자의 녹진한 유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과조리한 노른자를 줄 바에는.. 더보기
면발 맛으로 먹는 우동, 교다이야 (Y) 우동에서 중요한 것은 면발일까, 국물일까. 물론 둘 중 하나라도 맛이 없다면 거론할 가치도 없겠지만, 우동이라는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드는 요소를 굳이 따지자면 어느 쪽일까? 나는 애초에 걸쭉한 스프류가 아닌 맑은 국물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는 사람이 아니고, 일본 편의점에 갔을 때 야끼소바와 야끼우동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면 두 번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야끼우동을 고른다. 소스가 스며든 쫀득쫀득한 면발을 씹는 느낌이 좋다. 일식 돈가스를 먹을 때도 가능하다면 밥 대신 우동을 주문해서 국물은 목이 막힐 때나 숟가락으로 한두 번 떠먹고 면발은 모조리 먹어 치운다. 그래, 그렇다면 적어도 나는 우동 면발을 좋아하는 것이겠다. 우동 면은 독특하다. 보통 둥근 모양을 띠는 각종 면들과 달리 홀로 모난 구석을 당당.. 더보기
레몬을 온전히 즐기는 법, 레몬 콩피 [정연주] 레몬을 온전히 즐기는 법, 레몬 콩피 Lemon Confit 레몬은 껍질이 생명이다. 즙만 시원하게 짜 내도 상큼한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지만, 요리에 깊고 은은한 레몬향을 더하려면 반드시 껍질에 가득한 향기 오일이 필요하다. 산뜻한 레몬 케이크를 구울 때, 채소와 허브를 듬뿍 넣은 오일 파스타에 깊이를 더할 때, 고기에 감귤향을 가미해서 마리네이드할 때, 싱그러움이 두드러지는 샐러드를 만들고 싶을 때, 일단 제스터를 손에 쥐자. 레몬 껍질을 갈아 넣을 때 하얀 속껍질이 들어가면 쓴맛이 나니까, 가능하면 전용 제스터를 사용하는 편이 좋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은 마이크로플레인의 손잡이가 길쭉한 제스터다.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하면 칼을 비롯한 온갖 조리도구가 든 가방을 받는데, 안타깝게도 제.. 더보기
고즈넉한 이탈리안, 이태리재 (Y) 소격동에 자그마하게 자리잡은 한옥 이탈리안 레스토랑, 이태리재. 아직 미처 메뉴판도 나오기 전이지만, 이날 먹은 모든 음식이 메뉴판에 올라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편안하게, 고즈넉하게 정통 이탈리안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Blog: 같은 주제 아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모임, 『노네임 포럼』 http://nonameforum.tistory.com/ 더보기
크림치즈 1kg, 어찌어찌 해치우기 이 모든 여정의 시작은 레드 벨벳 케이크였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하는 칼럼 준비를 위해서 레드 벨벳 케이크를 구울 계획을 세웠다. 당시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레드 벨벳 케이크에 바르는 프로스팅은 익힌 루 프로스팅. 하지만 만들기 쉬우면서 가벼운 산미가 케이크의 뒷맛을 잡아주는 크림치즈 프로스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전통을 버리기로 마음먹었었다. 분명히 레드 벨벳 케이크 레시피를 잡으려면 서너 번 이상은 구워야 할 테고, 컵케이크가 아닌 홀케이크를 구울 생각이니 크림치즈는 넉넉히 사야겠지! 그렇게 나는 인터넷에서 끼리 크림치즈 1kg을 주문했다. 하지만 때는 구정이라 집에 내려가야 했고, 집은 부산이고, 크림치즈가 도착할 곳은 서울의 우리 집이었지만, 구정 선물 러쉬 때문에 크림치즈는 제 시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