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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긴급 처방전, 머그컵 브라우니 [TOPIC:4] 긴급 처방전, 머그컵 브라우니 (정연주) 어째서 머그컵 브라우니를 만들었는가. 자고로 베이킹이란 오븐으로 하는 것이니, 할 거면 제대로 오븐에서 굽고 아니면 차라리 팬케이크류로 전향해야 옳다. 요리마다 최적의 도구가 있기 마련이니까. 냄비에 끓여야 제격인 라면을 프라이팬에 삶아놓고 맛이 왜 이러냐고 투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뜸 달리는 ‘오븐 없는데’ 식의 댓글을 보면 신물이 난다. 오븐 비싼 거, 알지. 내가 쓰는 오븐도 비용·공간 문제로 미니오븐이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도구일 뿐이니, 오븐이 없으면 있는 도구로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요리하면 된다. 그런데 왜 굳이 머그컵과 전자레인지라는 조합으로 머그컵 브라우니를 만들었는가? 브라우니는 특별하다. 어디가? 성질 급할 .. 더보기
노른자 찬양론자의 노른자 간장절임 노른자 찬양론자의 노른자 간장절임(정연주) 누군가를 위해 달걀을 삶거나 데치거나 부칠 때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것은 바로 노른자의 상태다. 고작해야 무게 50g인 달걀 속에서 달랑 3분의 1의 비중을 차지하는 노른자. 날달걀부터 시작해서 회색빛이 돌도록 하염없이 익힌 과완숙달걀에 이르기까지 달걀의 질감 변화는 워낙 스펙트럼이 넓지만, 그 중에서도 노른자의 태세 전환은 무서울 정도다. 날달걀에서 촉촉한 반숙 상태까지는 어디에 얹어도 스며들고 퍼지면서 어우러진다. 이 시점 이후부터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아니, 이렇게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를 굳이 퍽퍽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완숙 애호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노른자의 녹진한 유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과조리한 노른자를 줄 바에는.. 더보기
면발 맛으로 먹는 우동, 교다이야 (Y) 우동에서 중요한 것은 면발일까, 국물일까. 물론 둘 중 하나라도 맛이 없다면 거론할 가치도 없겠지만, 우동이라는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드는 요소를 굳이 따지자면 어느 쪽일까? 나는 애초에 걸쭉한 스프류가 아닌 맑은 국물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는 사람이 아니고, 일본 편의점에 갔을 때 야끼소바와 야끼우동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면 두 번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야끼우동을 고른다. 소스가 스며든 쫀득쫀득한 면발을 씹는 느낌이 좋다. 일식 돈가스를 먹을 때도 가능하다면 밥 대신 우동을 주문해서 국물은 목이 막힐 때나 숟가락으로 한두 번 떠먹고 면발은 모조리 먹어 치운다. 그래, 그렇다면 적어도 나는 우동 면발을 좋아하는 것이겠다. 우동 면은 독특하다. 보통 둥근 모양을 띠는 각종 면들과 달리 홀로 모난 구석을 당당.. 더보기
레몬을 온전히 즐기는 법, 레몬 콩피 [정연주] 레몬을 온전히 즐기는 법, 레몬 콩피 Lemon Confit 레몬은 껍질이 생명이다. 즙만 시원하게 짜 내도 상큼한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지만, 요리에 깊고 은은한 레몬향을 더하려면 반드시 껍질에 가득한 향기 오일이 필요하다. 산뜻한 레몬 케이크를 구울 때, 채소와 허브를 듬뿍 넣은 오일 파스타에 깊이를 더할 때, 고기에 감귤향을 가미해서 마리네이드할 때, 싱그러움이 두드러지는 샐러드를 만들고 싶을 때, 일단 제스터를 손에 쥐자. 레몬 껍질을 갈아 넣을 때 하얀 속껍질이 들어가면 쓴맛이 나니까, 가능하면 전용 제스터를 사용하는 편이 좋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은 마이크로플레인의 손잡이가 길쭉한 제스터다.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하면 칼을 비롯한 온갖 조리도구가 든 가방을 받는데, 안타깝게도 제.. 더보기
고즈넉한 이탈리안, 이태리재 (Y) 소격동에 자그마하게 자리잡은 한옥 이탈리안 레스토랑, 이태리재. 아직 미처 메뉴판도 나오기 전이지만, 이날 먹은 모든 음식이 메뉴판에 올라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편안하게, 고즈넉하게 정통 이탈리안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Blog: 같은 주제 아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모임, 『노네임 포럼』 http://nonameforum.tistory.com/ 더보기
크림치즈 1kg, 어찌어찌 해치우기 이 모든 여정의 시작은 레드 벨벳 케이크였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하는 칼럼 준비를 위해서 레드 벨벳 케이크를 구울 계획을 세웠다. 당시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레드 벨벳 케이크에 바르는 프로스팅은 익힌 루 프로스팅. 하지만 만들기 쉬우면서 가벼운 산미가 케이크의 뒷맛을 잡아주는 크림치즈 프로스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전통을 버리기로 마음먹었었다. 분명히 레드 벨벳 케이크 레시피를 잡으려면 서너 번 이상은 구워야 할 테고, 컵케이크가 아닌 홀케이크를 구울 생각이니 크림치즈는 넉넉히 사야겠지! 그렇게 나는 인터넷에서 끼리 크림치즈 1kg을 주문했다. 하지만 때는 구정이라 집에 내려가야 했고, 집은 부산이고, 크림치즈가 도착할 곳은 서울의 우리 집이었지만, 구정 선물 러쉬 때문에 크림치즈는 제 시간.. 더보기
에버 델리의 인생 샌드위치, BLPT [정연주] 에버 델리의 인생 샌드위치, BLPT 고백하건대 나는 찐감자를 밥이나 빵과 맞교환을 하면 했지, 감자를 좀처럼 반찬으로 먹지 않는다. 탄수화물이 겹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니까! 감자 러버로서 감자는 메인으로, 죄책감 없이 즐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느 순간 확립한 원칙이다. 하지만 서촌에 자리한 ‘에버 델리’의 BLPT 샌드위치 앞에서는 하찮은 내 원칙 따위가 설 곳이 없다. 보통은 베이컨(B)과 양상추(L), 토마토(T)를 넣은 BLT 샌드위치를 주로 판매하지만, 에버 델리에서는 치즈와 멋지게 어우러지는 감자(P)를 넣어서 BL’P’T를 선보인다. 후배의 인생 최고의 샌드위치라는 말에 그렇다면 먹어봐야지, 하며 호기롭게 맛본 결과. 뭐, 빵과 맞교환을 하지 않으면 감자를 먹지 않아? .. 더보기
르 꼬르동 블루 이스터 초콜릿 특강. 달걀로 만든 토끼! 아니, 분명 이것보다 귀여웠는데. 미묘하게 무서운 얼굴이 되었다. 하비에르 메르카도 제과장의 이스터 버니 초콜릿 공예. 3월 7일 월요일, 정규도 특강도 전부 요리만 들었던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에서 이스터 초콜릿 특강을 들었다. 가끔 요리 수업을 제과 강의실에서 할 때도 있어서 강의실 자체는 익숙했지만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요리 쉐프가 수업 막바지로 갈수록 세 곳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오케스트라를 혼자 연주하는 마에스트로 같다면, 초콜릿을 세공하는 제과 쉐프는 발에 못이 박혔다는 사실도 잊고 대리석을 조각하는 데 여념이 없는 예술가 같다. 물론 초콜릿 공예 하나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초콜릿은 냉장고, 스토브, 진열대 등 주방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바쁘게 움직이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초콜릿 토끼.. 더보기